눈달린 냉장고

[히치콕과의 대화]에서 프랑스와 트뤼포는 히치콕에게 '냉장고 안쪽에 카메라를 설치하는 최근 유행'에 대해 불평을 늘어놓습니다. 그의 불평은 이치에 맞습니다. 사람들은 냉장고 안에서 사물을 볼 수 없습니다. 결코 자연스러운 장소는 아니죠.

하지만 트뤼포가 불평을 늘어놓건 말건, 많은 감독들이 계속 카메라를 냉장고 안에 밀어넣습니다. 관객들도 슬슬 그런 장치에 익숙해진 것 같고요. 여전히 아이디어 자체가 슬쩍 괴상해서 나올 때마다 이상한 느낌이 들긴 하지만요. 아주 자연스럽게 영화 규칙에 흡수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독창적인 시각적 스타일로 보기엔 진부해진 그 어정쩡한 선 위에 서 있는 것이죠.

왜 그들은 끝도 없이 냉장고에 카메라를 밀어 넣고 밑반찬의 시선에서 주인공들을 바라보는 걸까요? 냉장고의 구조를 생각해보면 대충 이해가 됩니다. 냉장고는 문이 있는 작은 방입니다. 냉장고에서 물건을 꺼내는 사람들은 잠시 그 문을 열고 냉장고라는 방을 방문했다가 나갑니다. 다시 말해 밑반찬의 시선이라는 걸 잠시 잊는다면 그 비주얼은 그렇게 부조리하지 않습니다.

여기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리듬감이죠. 냉장고를 여닫는 시간은 비교적 짧은 편이라 이 장면의 삽입으로 우린 길게 늘어진 신을 끊어 보다 날카로운 리듬을 제공해줄 수 있습니다. 비교적 좁은 공간인 부엌에서 새로운 시점을 부여하는 역할을 해주기도 하고요.

고유의 비주얼적인 가치도 있습니다. 냉장고는 하얀 빛으로 가득 찬 방이기도 합니다. 주인공의 얼굴과 상체에 쏟아지는 하얀 빛은 상황에 따라 그들의 얼굴을 아름답게도, 창백하게도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장점은 관객들의 관음증을 극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냉장고를 열 때 사람들은 자기를 속이지 않습니다. 우린 냉장고 안쪽에서 그들의 꾸미지 않은 표정과 비밀을 엿볼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가 냉장고 안에 들어 있는 김치 찌꺼기라는 사실을 잠시 잊어야 하겠지만 말입니다. (02/10/07)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