닭살 더빙

우리나라 영화계에서 동시 녹음이 당연시된 것은 극히 최근의 일입니다. 간신히 십 년을 조금 넘었을 걸요. 우리만 그랬던 것도 아니에요. 영화 선진국을 자처하는 이탈리아 같은 나라도 동시 녹음이 꽤 늦은 편이니까. 그 나라 영화에 안소니 퀸이나 버트 랭커스터 같은 외국 배우들이 자주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후시 녹음이 당연시된 환경 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제가 있다면 우린 단순히 후시 녹음만을 한 것이 아니라 배우들의 대사 연기를 전문 성우들에게 맡겨 버렸다는 것입니다. 완벽한 분업화였던 것이죠. 이런 습관의 잔재는 영화의 동시 녹음이 당연시되던 때에도 한 동안 다른 분야에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광고 말이에요. 우리가 광고에서 최진실의 진짜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던 건 비교적 최근 일입니다.

현대 관객들에게 옛 한국 영화들이 이상하게 느껴지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바로 이런 성우들의 후시 녹음입니다. 한마디로 너무 부자연스럽고 작위적이며 웃겨요. 들으면 닭살이 마구 돋을 지경입니다.

꼭 성우 탓은 아니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연기 패턴도 변하니까요. 지금까지 영화 연기는 사실적인 스타일로 발전해왔습니다. 옛 영화의 과장된 대사 연기는 할리우드나 프랑스의 영화에서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죠. 이런 건 문제가 아닙니다. 단지 다른 종류의 연기인 것이죠.

그러나 그냥 배우들과 성우들의 목소리 연기는 같지 않습니다. 성우들은 그냥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지 않아요. 그들은 보다 고정된 스타일에 사로잡혀 있고 과장을 합니다. 역시 우리만의 문제는 아니죠. 이탈리아의 자국 영화와 이탈리아어로 더빙된 미국 영화의 대사를 번갈아 들어보세요. 이탈리아어를 한 마디도 못하는 관객들도 그 차이를 느낄 수 있을 겁니다. 마찬가지로 아주 가끔 만들어졌던 한국 동시녹음영화의 목소리 연기나, 후시 녹음이라도 배우가 직접하는 더빙은 성우들의 후시녹음보다 훨씬 자연스럽게 들립니다.

스타일은 자신이 연기를 총체적으로 책임질 수 있는 라디오극이냐, 아니면 남의 연기에 자신의 목소리를 덧입히는 더빙이냐에 따라 달라지기도 합니다. 후자 쪽이 더 위태롭죠. 남의 연기에 끌려다니는 셈이니까.

이런 고정된 스타일은 실제 자연스러운 연기보다 빨리 낡습니다. 고정된 연기 스타일은 당시 사람들의 남녀 관계나 계급 관계에 대한 생각이나 '쿨'함에 대한 집착을 확대해 반영합니다. 그리고 이런 건 사실 실제 당시의 언어 습관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어 당시 사람들이 눈물을 흘리며 들었을 [별들의 고향]의 경아 목소리가 현대 관객들에게 짜증날 정도로 간사하게 들리는 것은 그 동안 언어 습관이 바뀌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여성들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어느 정도 변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스타일은 창조적이고 개성적인 연기를 가로 막기도 합니다. 옛날 한국 영화들에서 주인공역 성우들은 다들 비슷하게 '예쁘거나' '멋있는' 목소리만 냅니다. 동시 녹음 시대에 접어들자, 김지미 아줌마의 실제 목소리를 들은 사람들은 그 걸걸함에 기겁하지 않았던가요? 그런데 그 걸걸함은 지금까지 밋밋하기 짝이 없었던 성우들의 목소리보다 훨씬 기억하기 쉽고 인상적인 것이었습니다.

이제 배우들에게 목소리를 빌려주는 것은 성우들의 주업이 아닙니다. 옛날 성우들의 고정된 스타일은 농담거리이거나 순진했던 시절의 옛 향수를 자극하는 장치입니다. 후시녹음의 시대는 갔습니다. 다행이라고 할 수밖에. (01/11/23)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