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기에서 애정으로

'내기에서 애정으로'는 주로 틴에이저 로맨스에서 사용되는 공식입니다. 순전히 내기에서 이기려는 (또는 그만큼이나 이기적인) 목적으로 인기 없는 여자에게 접근한 남자가 그만 그 여자한테 빠져 버린다는 것이 주 내용입니다. 물론 나중에 이 남자의 음흉한 음모가 폭로되어 둘의 사이는 갈라지지만 사랑의 힘은 모든 것을 극복합니다. 남자가 인기 없고 여자가 인기 있는 경우는 상대적으로 적습니다. 그건 이 이야기가 기본적으로 신데렐라 공식이기 때문이지요.

틴에이저 로맨스에서 이런 이야기가 유달리 많은 이유는, 대부분 틴에이저 로맨스가 성인 로맨스의 희미한 모방이기 때문입니다. 양식화된 틴에이저 로맨스는 로맨스 자체보다는 사람들이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을 다루기 마련이죠. 그만큼 '내기에서 애정으로'가 단단하게 고정된 클리셰라는 말입니다. 물론 영화 속 틴에이저들이 성인보다 시간이 많다는 것도 이유가 되겠지요. 사실 어른들은 진짜 사랑을 하기에도 시간이 모자라는 법입니다.

하지만 이런 공식에도 진리와 그에 바탕을 둔 교훈이 담겨 있습니다. 우린 주로 첫 인상만으로 사람을 평가합니다만, 그게 그렇게까지 잘 맞는 경우는 많지 않죠. 어떤 사람에 대해 알려면 일단 그 사람과 많은 시간을 보내며 서로의 마음을 열어봐야 합니다. 그 동기가 아무리 불순한 것이라고 하더라도 결과는 첫 인상만 달랑 믿는 것보다 훨씬 나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심오한' 통찰력에 바탕을 둔 공식이기 때문에, 제대로 된 드라마만 만나면 이 뻔한 이야기도 깊이 있는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낸시 사보카의 [샌프란시스코의 하루 밤]이 대표적인 이야기였지요. 이 공식의 레즈비언 버전이었던 [쇼우 미 러브]도 이런 공식의 진부함을 탈출한 작품이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그건 이들이 이 공식을 그대로 이용하는 대신 부스터로만 이용하고 재빨리 던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샌프란시스코의 하루 밤]이나 [쇼우 미 러브]나,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부분은 폭로 이후입니다.

이게 싫다면 공식을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장르 장난감으로 가지고 노는 방법도 있습니다. [쉬즈 올 댓],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모두 그런 이야기였지요.

그게 싫다면 중간에서 무자비하게 파괴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캐리]는 캐리가 프롬 퀸의 왕관을 쓸 때까지만 해도 전형적인 '내기에서 애정으로'의 이야기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캐리가 돼지피를 뒤집어 쓴 뒤론 그러고 싶어도 그럴 수 없지요.

그렇다면 이 클리셰를 그대로 받아들일 수는 없는 걸까요? 못할 건 또 뭐 있습니까? 언제나 말했지만, 진부한 것들은 진부함 특유의 매력이 있습니다. [사브리나]와 같은 영화를 보세요. 뻔한 내용이지만 여전히 매력적이지 않습니까? (00/05/02)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