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좀 보소 상징주의

영화 만드는 사람들이 그냥 재미있는 이야기만 만들어 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겠는데, 사람이란 게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그들은 자기네들이 만드는 영화가 단순히 재미있는 이야기 이상이기를 바라지요. 재미있기도 하지만 '멋있거나' '깊이 있는' 작품이 되기를 바라기도 한다는 말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야기와 캐릭터를 '멋있고' '깊이 있게' 만들 수 있을까요? 이야기나 캐릭터에 보여지는 것 이상의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걸 말해주면 됩니다. 그러나 그걸 직접 말하면 김이 빠집니다. 뭔가 더 '은밀한' 방법을 써야 해요. 그렇다고 그 은밀함이 지나치면 관객들이 눈치를 못 챌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 중도를 적절하게 택하자니 상당히 세련된 테크닉이 요구되는데, 그건 상위 1퍼센트의 고급 작가들이나 가지고 있는 능력입니다.

나머지 99퍼센트 작가에겐 나 좀 보소 상징주의가 그 해결책입니다. 나 좀 보소 상징주의는 분명 직접 말하는 것보다는 세련되고 멋스러워 보입니다. 그리고 만들기도 쉽지요. 주제나 캐릭터를 대표하는 상징을 노골적으로 끄집어 내서 관객들이 잘 보이게 흔들어주는 겁니다. 그래도 눈치 못 챌 것 같으면 주인공 입으로 직접 그 상징에 대해 이야기하는 수도 있지요. 꽃말이나 점성술과 같은 기성품 상징주의를 끌어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 트릭에는 또다른 이점이 있습니다. 그게 뭔지 아세요? '멋스러운' 제목 짓기가 쉽답니다. 최근에 나온 한국 영화 리스트를 대충 보세요. [쉬리]나 [카라]나 모두 나 좀 보소 상징주의에서 제목을 끌어낸 영화들입니다.

나 좀 보소 상징주의는 나 좀 보소 상징주의라는 이유만으로 배척당해서는 안됩니다. 노골적인 상징주의라고 다 나쁘거나 진부한 것은 아니니까요. 훌륭한 작가나 감독이라면 분명한 상징을 관객의 코 앞에 흔들어대면서도 인상적인 경험을 창조해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게 그리 쉽다면 이게 고정된 클리셰일 리가 없습니다. 대부분은 그 정도까지 미치지 못하지요. 더 고약한 건 그들이 자기네들이 그 정도에 못미친다는 것을 모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결과 상징주의의 대부분은 무의미한 똥폼이 되어버리고 곧 실소감이 되지요. (00/01/15)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