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신들린 피아노

유령들이 가장 좋아하는 악기는 무엇일까요? 두 번 생각할 필요도 없습니다. 피아노니까요. 세상엔 피아노치는 유령에 대한 영화들과 소설들로 넘쳐납니다. 가장 최근의 예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지요.

왜 피아노만 그렇게 인기가 있는 것일까요?

우선 피아노는 많이 보급되어 있습니다. 피아노를 치는 사람들은 바이올린이나 플룻을 연주하는 사람들보다 많습니다. 사람들의 비율이 그렇다면 유령들의 비율도 그렇겠죠.

덩치가 커서 가구 취급을 받으며 대대로 집과 함께 대물림된다는 것도 이유가 됩니다. 바이올린이나 첼로와 같은 악기는 주인이 죽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팔리거나 장식장이나 창고에 처박히겠지만 피아노는 언제나 좋은 자리를 차지하며 버티고 서 있죠. 유령들이 리사이틀하기 딱 좋습니다.

게다가 자세도 잘 나옵니다. 유령이 첼로를 연주하려면 힘이 꽤 들지요. 첼로를 몸으로 지탱하고 활을 들어 켜야 하는데, 유령한테 그게 쉬울 리가 없습니다. 어떻게 자세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건 투명인간의 리사이틀처럼 보일 겁니다. 바이올린이나 플룻도 마찬가지지요. 역시 커다란 건반악기들이 가장 그럴싸해 보입니다. 악기를 들 필요가 없으니까요. 유령들은 건반만 누르고 페달만 밟아주면 됩니다.

직접 노래를 부르는 건 어떠냐고요? 그것 역시 좋습니다. 잘 하면 아주 그럴싸한 분위기를 낼 수 있지요. 하지만 유령의 존재를 암시만 하고 싶다면 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목소리는 상당히 직접적이니까요.

그러나 피아노 역시 남용할 만한 것은 아닙니다. 건반만 누르고 페달만 밟아주면 된다고 했지만, 이 역시 몸 없는 유령들에게 쉬울 리가 없으니까요. [여고괴담 두 번째 이야기]의 피아노 유령 부분은 그래서 좀 작위적이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매끄럽게 피아노를 치는 유령은 유령 같지 않거든요. 존재감이 너무 강했습니다.

보다 은밀한 방식이 도움이 됩니다. [체인즐링]에서는 한참 동안 음이 안 나오다가 피아니스트가 떠나니까 한 음을 울리는 방법으로 유령의 존재를 암시했습니다. [언인바이티드]의 유령은 피아노를 직접 치는 대신 피아니스트의 정신을 지배해 음악을 조절했습니다. [체인즐링]의 다른 장면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지요.

다른 악기를 개발하는 방법도 있을 겁니다. 가장 다루기 쉬운 건 뮤직 박스겠죠. 하지만 하프와 같이 크고 고정된 악기 역시 충분히 귀신 들릴 자격이 있습니다. (99/12/30)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