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네 엄마다

[스타트렉 딥 스페이스 나인] 마지막 시즌의 첫 에피소드를 며칠 전에 했습니다. 그 에피소드에서 시스코는 어떤 여자에 대한 비전을 보지요. 아버지와 그 여자가 함께 찍은 사진을 발견한 시스코는 아버지에게 그 여자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아버지가 대답하는군요. "그 여자는 네 엄마다."

아아악!

왜 비명을 지르냐고요? 한 번 생각해보세요. 초광속 우주선이 날아다니고 웜홀 저쪽에 우주 정거장을 세우는 시대지만 아직도 '나는 네 엄마다' 클리셰가 살아 있었던 겁니다! 얼마나 질긴 클리셰인지!

하긴 [스타 트렉]도 [스타 워즈]에 비하면 약과입니다. [스타 워즈]가 과연 먼 과거인지, 아니면 먼 미래인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어느 쪽이건 우리와 한참 떨어진 시대를 무대로 하고 있음은 분명합니다. 그런데도 영화의 가장 화끈한 장면은 다스 베이더가 루크에게 '나는 네 아버지다'라고 말하는 장면이 아닙니까?

'나는 네 엄마다' 클리셰는 단행본이나 독립된 영화보다는 시리즈나 연재물에 많습니다. 대부분 끝없이 줄줄 이어지는 갈등 관계에 변화를 주기 위해 사용됩니다. 자, 피터지게 싸우는 두 남자가 있습니다. 처음 몇 편에서는 재미있었습니다. 그러나 계속 보면 이들의 단순한 싸움은 지겨워지죠. 해결책은? 지금까지 그들이 모르고 있었던 혈통의 비밀을 도입하는 것입니다. 한 남자가 다른 남자의 친 아버지라면? 그리고 그들이 몇 십 년 동안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면?

이성적으로 따진다면 지금까지 숨겨져 왔던 혈통 관계가 밝혀진다고 해서 그들의 명분이 바뀌는 것도, 시드는 것도 아니지만, 우리는 그렇게 야무진 동물은 아닙니다. 엄청난 혼란이 따라오죠. 그들이 그 발견으로 서로를 받아들이건, 더 증오하건, 혼돈은 필연적입니다. 당연히 이들을 정리하는데 상당한 페이지가 소요되고 따분해진 시리즈는 구원받습니다.

물론 이제는 그대로 드러내기엔 지나치게 노골적인 수법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그걸 그대로 다룰 생각은 하지 않죠. 그래서 [엑스 파일]이 멀더와 캔서맨의 관계에 적당히 안개를 뿌리는 거랍니다. 그 편이 덜 노골적이고 덜 진부해보이니까요. (99/11/22)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