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바꾸기

'말 바꾸기'는 세상에서 가장 안이한 코미디 트릭 중 하나입니다. 이런 거죠. 직장에서 신문을 읽는 남자가 있습니다. 그는 신문을 읽다가 뇌물을 주고 받은 정치가들에 대한 욕을 늘어놓습니다. 그런데 그는 욕이 끝나자마자 그가 욕을 했던 정치가처럼 노골적으로 뇌물을 뜯으려 합니다.

'말 바꾸기'는 우리의 어리석음과 약함에 대한 비판으로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정말로 이런 어리석은 행동을 할 만큼 아둔한 종족입니다. 도덕적 가치 판단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지극히 관념적이어서 쉽게 우리의 삶에 녹아들지 않고, 만약 녹아든다고 하더라도 우린 그걸 제대로 행할 만큼 강하지 못합니다. 세상엔 정말 뇌물 수수 정치가에 대한 욕을 마치자마자 뇌물을 받아먹는 사람들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는 어리석고 진부해보입니다. 만들기 쉬운 트릭이라 너무 많이 써먹었기 때문이죠. 그리고 우리가 실제로 둔하고 진부한 것과 영화나 텔레비전 속의 사람들이 둔하고 진부한 것은 사정이 다릅니다. 마땅히 그들은 우리보다 더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러려고 돈을 받고 일하니까요.

진실성도 떨어집니다. 우리는 어리석지만 그런 코미디에 나오는 사람들 만큼 '노골적으로' 어리석지는 않습니다. 뇌물 정치가 욕을 끝내자마자 뇌물을 받는 남자도 자기 행동에 대한 자의식은 어느 정도 남아있을 겁니다. 그러지 못할 만큼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하더라도 코미디에 나오는 것처럼 요란하게 소리를 칠 정도라면 중간에 자기가 무슨 일을 하는 지 정도는 알게 되겠죠.

이런 트릭을 말되게 하는 방법이 아주 없는 것은 아닙니다. [순풍 산부인과]에서는 미달이 아빠를 내세워서 '말 바꾸기' 트릭을 꽤 많이 써먹었습니다. 그리고 시청자들은 받아들였습니다. 그것들은 이미 단단하게 구축된 박영규라는 캐릭터에 봉사하는 것들이었으니까요. 우린 정말로 박영규라는 남자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상황을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드는 방법도 있습니다. 만약에 뇌물 정치가 욕을 하던 그 사람에게 정말로 뇌물 기회가 들어왔고 그가 이게 '말 바꾸기'라는 걸 알아차린다면? 그가 어떻게든 체면을 차리면서 뇌물을 받으려 복잡한 음모를 꾸민다면? 이런 식으로 나간다면 진실성도 살고 코미디도 믿음직해집니다. (99/11/18)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