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브 인터레스트

왜들 영화 만드는 사람들은 그렇게 사랑 이야기에 집착하는 걸까요. 연애 영화라면 이해가 가지만 왜 전혀 상관 없는 없는 영화에도 사랑 이야기를 꼭 액션 사이에 끼워넣으려는 걸까요?

[콘돌의 3일간]을 생각해보세요. 콘돌은 언제 목이 달아날지 모르는 스파이입니다. 그런 친구가 한가하게 페이 더너웨이랑 연애할 여유가 있겠습니까? [39계단]을 보세요. 원작에는 여성 캐릭터가 한 명도 없지만, 영화 속의 하니는 수갑으로 얽힌 체육 교사랑 연애를 합니다. 물론 죽자고 쫓기면서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관객들이 연애 이야기를 좋아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관객들은 액션도 좋아하고 서스펜스도 좋아합니다. 왜 그렇게 연애 이야기만 매달리는 걸까요? 종족보존을 위한 본능이 그렇게까지 강렬한 것일까요?

여기에 다른 이유가 추가됩니다. 사람들은 성 균형이 깨진 영화를 보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여자만 나오는 영화나 남자만 나오는 영화는 일반 관객들에게 그렇게 어필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액션과 서스펜스, 정치적 모험담 따위엔 여성 캐릭터가 등장할 구석이 별로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여자를 어디다 넣어야 하지?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남자들과 연애하게 시키는 거죠.

이러자 대충 균형이 맞았습니다. 남자 주인공의 연애는 영화판에서 뛰는 많은 여성 배우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주었습니다. 관객들도 만족했고요.

그러나 러브 인터레스트 역은 여성 배우들에게 타이프라이터와 같은 것이었습니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의 여성들에게 타이프라이터는 귀중한 발명품이었습니다. 경제적인 독립을 이룰 수 있는 수익을 보장해주었으니까요. 하지만 타이프라이터는 여성의 직업의 다양성을 제한하고 억압하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좋았지만 갈수록 짐이 되었던 것이죠. 이런 역들은 여성 캐릭터들이 '연애'를 통하지 않고서는 어디에도 나가지 못하게 막았습니다.

그러는 동안 세상은 바뀌었습니다. 이제 많은 여성들이 사회에 진출했고 우린 다양한 직종의 여성들이 화면 위에서 직업인으로 뛰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러는 와중에도 이들의 역은 제한됩니다. 물론 직장 여성도 사람이니까 연애도 하고 실연도 하지요. 그러나 영화계의 굳은 머리들은 이들을 독립적으로 이용하는 대신 예전처럼 남자 주인공 주변에 고정했습니다. 여전히 연애는 접착제로 사용되었고요. 단지 이 때 여성은 의사([형사 가제트])나 심리학자([가상현실]) 따위로 직업이 붙어 있을 뿐이지요.

슬슬 솔직해질 때가 되었지만 옛 습관은 쉽게 죽지 않습니다. 보다 공정한 역할 배정이 돌아가려면 꽤 시간이 걸릴 거예요. (99/11/16)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