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빛 연기

'눈빛 연기' 따위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한 번 거울보고 연구해보세요. 아무리 눈에 힘을 주어도 눈빛이 밝아지는 일은 없습니다.

그건 사실 우리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게 아닙니다. 눈빛을 조절하는 것은 배우의 연기가 아니라 조명과 아이라이트입니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눈빛 연기'라고 부르는 건 뭘까요? 대충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좋은 배우가 대상에 (그게 상대 배우건, 폭탄이건, 그리는 그림이건) 극도로 몰입한 상태에서 연기할 때 우린 '눈빛 연기'에 가까운 어떤 것을 보게 됩니다. 하지만 이건 눈빛 자체와는 상관없습니다. 배우가 몰입한다고 눈빛이 증가하는 일은 없습니다. 억지로 이름을 붙인다면 동공 연기라고 불러야 하겠지요. 엄격하게 말하면 연기도 아닙니다. '동공 연기'는 연기가 아니라 연기의 결과입니다.

하여간 이런 연기를 보는 건 흥분됩니다. 대상을 열심히 들여다본다고 해서 훌륭한 연기라는 증거가 되지 않지만, 훌륭한 배우가 이런 상태에 올라있다면 결과는 대부분 좋기 때문입니다.

두번째 눈빛 연기는… 에헴… 사실 이건 눈에 힘주기 연기라고 불러야 합니다. 주로 눈 주변의 근육에 힘을 주고 '눈빛을 내는 척'하는 겁니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로미오 + 줄리엣]에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가 보여준 '눈빛 연기' 같군요. [비트]의 정우성도 만만치가 않고요.

눈에 힘을 준다고 대단한 연기가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연기도 아니지요. 그냥 눈에 힘을 주는 것일 뿐입니다. 이런 연기를 하는 배우들은 '눈 주변 근육에 힘을 주며' 자연스러운 연기를 하는 배우들을 흉내내는 것에 불과합니다. 가짜예요.

가짜일 뿐 아니라 위험하기까지 합니다. '눈빛 연기'는 배우들이 다음 단계의 연기로 올라가지 못하게 막고 나르시시즘에 빠지게 하며 가짜 만족감을 줍니다.

이런 건 될 수 있는 한 안하는 게 좋습니다. 하지만 얼굴 반반한 남자 배우들이 가장 쉽게 빠지는 함정이기도 하죠. 거기 잘 속아넘어가는 팬들도 많고. (99/10/27)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