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간 뮤직 비디오

1.

[노팅 힐]에서 줄리아 로버츠와 헤어진 휴 그랜트는 처량하기 짝이 없는 표정으로 노팅 힐의 거리를 걷기 시작합니다. 그러는 동안 그의 처지와 딱 맞는 배경 음악이 흐르면서 서서히 계절이 가을에서 겨울로, 겨울에서 봄으로 바뀌지요.

이 장면 자체가 진부하다고 말하려는 것은 아닙니다. 나름대로 독창적이고 재미있는 장면이니까요. 사실 저희가 '막간 뮤직 비디오'라고 이름 붙인 트릭도 그 자체로는 진부한 것이 아닙니다. 그냥 중성적인 트릭 중 하나일 뿐이죠.

음악은 여러 모로 쓸모있는 도구입니다. 산만한 컷들을 정서적으로 연결시켜주는 접착제이기도 하고 주인공의 감정을 보다 효율적으로 전달하는 수단이기도 하죠. '막간 뮤직 비디오'들은 음악의 이런 기능을 적극적으로 이용하는 장치입니다.

그러나 '오리지널 사운드 트랙'이 상업적인 가치를 가지게 되기 시작하자 '막간 뮤직 비디오'는 서서히 타락하기 시작했습니다. 필요해서 음악을 넣는 대신 상업적 목적을 위해 음악을 억지로 끼워넣어야 할 상황에 말려들었던 거죠. 생각해보세요. 내용과 별 상관없는 노래를 영화에 삽입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요? 바로 '막간 뮤직 비디오'입니다.

그 결과 온갖 노골적인 술수들이 튀어나옵니다. [스텝 맘]에서 수잔 서랜든과 아이들이 아양을 떠는 장면이 그 대표적입니다. 귀엽긴 해요. 캐릭터와도 대충 맞고요. 그러나 사운드 트랙과 연결해 영화 홍보에 이용하려는 속셈이 너무나도 쉽게 드러나서 보고 있노라면 거의 역겨워지기까지 합니다.

2.

그래도 [스텝맘]의 노래는 영화의 일부분이기나 합니다. 사운드트랙 앨범을 팔아먹으려는 속셈은 종종 어처구니 없는 트릭들을 동반합니다. 가장 대표적인 수법은 라디오에 나오는 음악으로 한 1,2초 쯤 들려준 뒤 그걸 핑계로 앨범에 수록하는 짓이지요. 도대체 왜들 그러는지 모르겠습니다. 머리와 꼬리가 바뀐 것 같아요.

팔아먹으려는 팝송을 끼워넣을 건덕지가 없을 때도 있습니다. 특히 라디오나 전축이 없던 시절을 다룬 사극이 그렇지요.

그래도 그 사람들은 포기 못합니다. 요새는 엔드 크레딧이 꽤 길기 때문에 거기에 끼워넣을 수 있거든요. [로빈 훗: 도둑의 왕자], [타이타닉], [브램 스토커의 드라큘라]와 같은 영화들이 대표적입니다. 영화 내내 정통적인 스코어를 고집하다가 맨 마지막에 팔아먹으려는 팝송을 끼워넣는 거죠. 그렇게 하면 영화의 전체 균형이 깨지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모양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마지막이라고 해도 전체 균형이 망가지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우스꽝스러워보이는 것도 어쩔 수 없고요. 여전히 속은 뻔히 들여다 보이지요. 아마 2,30년 뒤의 사람들은 이런 뻔한 트릭을 '8,90년대식 수법'라고 부르며 놀려댈지도 모르겠습니다. (99/08/31)

D&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