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상실

기억상실을 현대 픽션의 세계에 소개한 사람은 제임스 힐튼이었습니다. [잃어버린 지평선]이 바로 그 작품이라고 할 수 있어요. 물론 그 이전에 기억상실이 픽션에 쓰이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지만 본격적으로 기억상실이라는 트릭을 도입하고 또 그것을 장르화한 것은 힐튼의 공이지요. [잃어버린 지평선]은 도입부의 미스테리를 설정하기 위한 것에 불과했지만 그의 다른 소설 [마음의 행로]에서는 기억상실이라는 트릭이 스토리의 기둥입니다.

힐튼이 문을 열자 기억상실 소재의 작품들은 수많은 대중적인 픽션의 사랑을 받으며 부풀어 올랐습니다. 이상한 일도 아니지요. 참으로 로맨틱한 도구가 아닌가요? 로맨틱할 뿐만 아니라 형이상학적이기도 합니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탐구를 이처럼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트릭도 많지 않습니다.

그러나 기억상실로 끌어갈 수 있는 이야기는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대충 이런 것이죠. 주인공이 기억을 상실한다. 그리고 예전의 애인과 다시 사랑에 빠진다. 물론 애인의 친구와 사랑에 빠질 수도 있고 전처나 전남편과 다시 사랑할 수도 있지만 멜로드라마에서 기억상실의 활용은 대부분 비슷합니다. 기억을 잃은 뒤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는 거죠.

서스펜스 물도 별로 차이는 없습니다. 기억을 잃은 주인공 뒤를 정체불명의 악당들이 쫓아옵니다. 주인공은 필사적으로 쫓기면서 내가 왜 이들에게 쫓기는지, 그들이 누구인지를 밝혀야 합니다. 이럴 때는 경찰도 믿을 수 없죠. 보나마나 자기가 저질렀는지 안 저질렀는지도 모르는 범죄의 누명을 쓰고 있을테니 말입니다.

결국 좁은 터를 여럿이 팔 수밖에 없었고 스토리는 진부해졌습니다. 진부함이 늘어날수록 그 작위성도 과장되었고요. 사악한 쌍둥이와 함께 소프 오페라의 영역으로 떨어진 것도 이상할 건 없죠.

그러나 몇몇 영화는 탈출구를 발견했습니다. [토탈 리콜]과 같은 작품은 기억상실과 가상현실을 결합해서 기억상실의 새로운 터를 판 작품입니다. 필립 케이 딕이 수십 년 전부터 죽어라 써댄 내용이니 전적으로 새롭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영화 세계에서는 나름대로 신선했죠. 이 가짜 기억 트릭도 곧 낡아버렸다니 유감스럽습니다. (99/07/01)

DJUN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