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에 꽂힌 칼

'등에 꽂힌 칼'은 개인적으로 아주 좋아하는 클리셰 중 하나입니다. 프랑스와 트뤼포의 마지막 영화 [일요일이 기다려진다]에서 예를 하나 뽑아보죠. 스탠리 큐브릭의 [영광의 길]이 상영되고 있는 극장 안에서 누군가가 매표원을 부릅니다. 극장에 들어갔던 매표원은 잠시 뒤 비틀거리면서 극장 밖으로 나와 표를 사려고 기다리던 손님의 품 안에 쓰러집니다. 매표원의 몸이 숙여지자 등에 꽂힌 무시무시한 단검이 드러납니다.

왜 하필이면 등일까요? 살인범이 해부학에 아주 밝지 않는 한 뒤에서 사람을 찔러 죽이는 건 결코 쉽지 않습니다. 훨씬 깊게 찔러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요.

물론 극적인 효과를 위해서지요. 등에 꽂힌 칼은 관객들에게 갑작스러운 충격을 주기 위해 고안되었습니다. 이 효과가 진부하다는 것을 잊고 본다면 등에 꽂힌 칼이 영화에 상당히 멋진 리듬을 준다는 걸 알게 될 겁니다. 피해자가 비틀거리며 걸어들어옵니다. 우리는 그 사람한테 일어난 폭력적 사태에 대해서는 모르지만 비틀거리는 걸음걸이로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짐작하게 됩니다. 피해자는 한참 관객들을 불안하게 만들다가 결국엔 푹 쓰러지면서 클라이맥스의 비명을 자아냅니다. 이 클리셰가 자아내는 분위기 조성과 압축된 폭력은 호러 영화에서 괴물이 나오기 전에 내보내는 음산한 음악이 주는 효과를 음악 없이 처리하는 것과 같습니다.

'등에 꽂힌 칼'은 그 비현실성 때문에 곧 진부해졌지만, 사실 진짜 효과적으로 애용되기 시작한 것은 이 트릭이 클리셰로 전환된 뒤부터였습니다. 특히 코믹 추리물에서 이 트릭은 자주 쓰였지요. '등에 꽂힌 칼'의 비현실성은 살인이라는 폭력의 잔인함을 약화시켰습니다. 양식화된 기호로서의 살인이 요구되었던 코미디 장르에서 이 클리셰를 완화제로 사용한 것은 당연했지요.

'등에 꽂힌 칼'을 가장 자주, 그리고 효과적으로 사용한 사람은 알프레드 히치콕이었습니다. 그는 [39계단]에서처럼 이 트릭을 진지하게 사용하기도 했지만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에서처럼 사건의 비현실성을 강화시키는 데 사용하기도 했고 [알프레드 히치콕 극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순수하게 농담으로만 사용하기도 했습니다. 등에 칼이 꽂힌 피해자는 히치콕의 영화에서 영화로 넘나들며 그의 영화를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은 기괴한 판타지의 세계로 개조했습니다.

이제는 '등에 꽂힌 칼'은 거의 사용되지 않습니다. 진부함을 이용한 농담으로 사용될 수 없을 정도로 진부해졌기 때문일까요? 네, 맞습니다. 그것도 이유입니다. 모든 농담에는 수명이 있는 법입니다.

하지만 더 큰 이유가 있습니다. 세상은 더 폭력적이 되었습니다. 더이상 관객들은 완충제가 필요하지 않아요. 현대 관객들은 [빅 히트]의 토막난 시체와 무자비한 총격전을 보고도 웃습니다. 이런 관객들의 신경을 챙겨주기 위해 폭력을 추상화할 필요는 없죠. 누구 말마따나 기사도의 시대는 간 것입니다. (99/03/27)

DJUNA